집에 티비가 없는 관계로(정말 없는 건 아닌데 없는 것과 똑같다) 지나간 방송들은 한 번에 모아서 보는 편이다. 얼마 전에 방송한 음악여행 라라라의 금지곡 특집을 이제사 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송 처음부터 충격이었다. 난 그간 장기하를 보면서 노래를 못 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너'를 부르는 장기하는 '노래가 부족하구나'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느낌은 (나 뿐만은 아니니라)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굳이 예를 일일이 드는 것이 무의미 할 만큼 (거의) 모든 곡들은 원곡 이상의 느낌을 줄 수가 없었다.
편곡도 너무 촌스럽고 보컬도 듣는 사람이 숨 넘어가는 보컬임에도 불구, 그래도 원곡이 마냥 좋은 경우가 너무 많다. 후발 주자가 저런 원곡자에 비해 정말 너무 심하게 소화를 못 해내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경우 원곡이 저 정도로 막장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야 너무나도 당연히 원곡의 명성과 감성이 그리워진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소위 '음악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악기/연주/보컬의 삼위일체가 조화되어 영광을 불러오는 경우다. 리메이크곡은 복원화처럼 깨끗하게 새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 원곡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명화를 아무리 원화에 가깝게 복원해도 그것이 복원화이듯, 명곡을 아무리 재편곡하고 사운드를 손 본다 해도 명곡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정확하지 못한 존재이다. 같은 음식을 같은 때 먹더라도 혼자 먹을 때와 여럿이 먹을 때는 다르다. 원곡에 쏟았던 애정만큼 리메이크에는 애정을 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대에 따른 신선도의 반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청자가 부여한 감정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곡보다 리메이크곡을 먼저 접하고 아주 나중에야 원곡을 들었을 때 원곡의 감동이 반감하듯 말이다. 혹은 작곡가의 감정과 의도가 반영된 하나의 작품이 재편곡에 의해 훼손되는 탓일 수도 있고.
오래된 곡이 먼지를 털고 새로운 옷을 입는 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놓쳤던 곡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원곡의 아성에 기대어 간다거나 원곡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리메이크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엔 분명 힘들것이다. 신/구 두 곡의 차이에 대한 이유가 어찌되었든 무리한 편승은 없었으면 좋겠다.
편곡도 너무 촌스럽고 보컬도 듣는 사람이 숨 넘어가는 보컬임에도 불구, 그래도 원곡이 마냥 좋은 경우가 너무 많다. 후발 주자가 저런 원곡자에 비해 정말 너무 심하게 소화를 못 해내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경우 원곡이 저 정도로 막장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야 너무나도 당연히 원곡의 명성과 감성이 그리워진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소위 '음악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악기/연주/보컬의 삼위일체가 조화되어 영광을 불러오는 경우다. 리메이크곡은 복원화처럼 깨끗하게 새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 원곡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명화를 아무리 원화에 가깝게 복원해도 그것이 복원화이듯, 명곡을 아무리 재편곡하고 사운드를 손 본다 해도 명곡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정확하지 못한 존재이다. 같은 음식을 같은 때 먹더라도 혼자 먹을 때와 여럿이 먹을 때는 다르다. 원곡에 쏟았던 애정만큼 리메이크에는 애정을 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대에 따른 신선도의 반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청자가 부여한 감정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곡보다 리메이크곡을 먼저 접하고 아주 나중에야 원곡을 들었을 때 원곡의 감동이 반감하듯 말이다. 혹은 작곡가의 감정과 의도가 반영된 하나의 작품이 재편곡에 의해 훼손되는 탓일 수도 있고.
오래된 곡이 먼지를 털고 새로운 옷을 입는 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놓쳤던 곡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원곡의 아성에 기대어 간다거나 원곡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리메이크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엔 분명 힘들것이다. 신/구 두 곡의 차이에 대한 이유가 어찌되었든 무리한 편승은 없었으면 좋겠다.
at 2009/08/10 02:49


최근 덧글